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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술잔을 든 채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건배사 듣는 자리다. 주례사가 길면 살짝 빠져나가거나 잡담이라도 하련만 센스 없는 건배사는 ‘극기 훈련장’으로 데려가기 일쑤다. 동의하지 않아도 맞장구를 쳐주는 게 예절이고 관행이다. 주로 선배나 상사가 건배를 제의하기 때문이다. 비공개 원칙이지만 평가항목은 네 가지. 간결하고 새로우면서 재미와 의미가 곁들여지면 좋다. 진부한데 해설까지 길게 곁들이면 최악이다. 건배사를 소재로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이 쓴 칼럼을 읽었다. ‘통통통’ 선창하면 ‘쾌쾌쾌’ 화답한다는 내용이다.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그리고 유쾌, 상쾌, 통쾌. 주문(?)만 외워도 뭔가 뻥 뚫릴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2014년 송년회식 자리의 술맛은 좀 개운치가 않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일이 마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의 간극 같아서다. 누군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눈앞에 펼쳐진 오늘은 빛바랜 졸업앨범 비슷해서일까. 대학은 종강을 맞았다. 느닷없이 칠판에 通이라고 쓰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통. 잘 읽는다. 소통, 형통, 대통 모두 ‘통할 통(通)’이다. 건배사로 제격이다. 이번엔 統을 썼다. 역시 맞힌다. 통일, 통솔, 통합 모두 ‘큰 줄기 통(統)’이다. 건배사로 쓰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은 痛이다. 못 맞힐 리 없다. 두통, 치통, 복통. 고통의 형제들 항렬은 가지런하다. 자, 지금부터 퀴즈다. ‘통쾌하다’고 말할 때 이 셋(通, 統, 痛) 중 어떤 ‘통’을 써야 어울릴까. 이번엔 정답비율이 높지 않다. 痛快가 맞는데 通快나 統快라고 유추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해석을 곁들이는 건 선생의 직분이다. “통쾌해지려면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 통해서, 한통속이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견뎌야 할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즐거움이 크다는 얘기다. 불행은 행복의 맞은편에 있지 않다. 같은 선상에 있다. 불행의 마지막 정거장이 행복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중간에 내려버린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학생들의 표정에 어둠이 깔린다. 마지막 ‘건배사’가 너무 길었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도는 모양이다. 미국 CIA 고문이 충격적이었다면 한국 청년들이 겪는 희망고문은 비극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희망을 이야기하니 듣기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칠판 글씨를 지우는 선생도 적잖이 뜨끔했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4.12.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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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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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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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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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발명해 3파장(빨강, 녹색, 그리고 파랑)의 LED로 백색광을 낼 수 있도록 공헌한, 그래서 인류의 '램프혁명'을 이끌었다고 얘기되는 3명의 일본계 과학자(아카사키, 아마노, 그리고 나카무라 박사)에게 주어졌다. LED는 백열등, 형광등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고 수명이 매우 길기 때문에 전력난이 심각해져 가고 있는 현대에 우리의 밤을 변함없이 밝혀줄 '램프혁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가정에서 LED 전구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공공시설의 LED 조명사용을 대폭 지원하며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LED 백색광이 에너지 절약의 차원에서는 혁명적임에 틀림없으나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 이래로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 산업화와 더불어 인류는 이미 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교대근무나 야근을 비롯하여 늦은 밤 시간까지 이어지는 사회 활동, 24시간 문을 여는 상업시설, 가정에서의 전자기기 사용 등 24시간 끊임없이 돌아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경제적 가치들과 더불어 인류의 생체시계는 교란되어 왔다. 교대근무를 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역학 연구에서 생체시계의 교란과 암, 대사질환, 심혈관계 질환, 그리고 우울증 등의 발병 사이에 영향이 있음이 밝혀졌으며,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에 비해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앞서 언급한 질병의 유병률이 높다는 사실, 더욱이 동물 모델에서 생체시계의 교란을 인위적으로 유발하였을 때 앞서 언급한 질병 등이 발현된다고 하는 연구 결과 들은 더 이상 생체시계의 교란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생체시계를 통해 환경에서 하루 단위로 일어나는 율동적인 변화(낮/밤, 온도 등)에 맞추어 적절한 생리작용 및 행동을 나타낼 수가 있다. 활동/수면 주기, 호르몬의 분비, 대사 관련 효소들의 합성 및 분비, 신경전달 물질의 합성 및 분비 등 많은 요소들이 24시간의 주기를 가지는 생체리듬을 나타낸다. 24시간의 주기로 율동적인 변화를 보이는 요소들(대사산물, 활동/수면 행동 등)은 생체시계를 동기화 하는 내재적 자극으로 다시 작용하여 생체시계 시스템을 공고히 한다. 생체시계가 교란되었을 때 우리 몸의 생리작용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시간대가 다른 곳을 여행할 때 '시차'를 느끼는 것에서 경험할 수가 있다. 밤 시간에 잠을 이루기가 어렵고, 식사 후 소화가 잘되지 않는 등, 불편한 상태를 며칠 겪고 나면 우리 몸의 생체시계는 다행스럽게도 바뀐 외부의 시간 자극에 맞추어 진다. 그러나 이런 교란이 지속적으로 이어 지거나, 빈번히 발생한다면 궁극적으로 건강의 이상이 유발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생체시계가 환경과 동기화 되는 과정은 눈을 통해 빛을 감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과정은 망막에서 사물을 구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막대(Rod)세포와 원뿔(Cone) 세포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망막신경절세포(Retinal Ganglion Cell)에서 멜라놉신(melanopsin)의 작용으로 일어난다. 멜라놉신은 빛의 모든 파장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 하지 않고 파랑색 파장의 빛(~484nm)에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현재의 백색 LED광은 파랑색 파장 빛의 함량이 매우 높아 우리의 밤을 백색 LED광으로 채워간다면 생체시계의 교란은 더욱 심해지거나 가속화될 것이 우려된다. 따라서 LED 백색광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고민과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램프혁명 이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기술 혁명을 목도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만 가치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생명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된 기술이 미치게 되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영향도 함께 고민하여, 궁극적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기술의 혁명을 올바르게 향유하며 질병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건강한 삶을 함께 영위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은영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MRC 만성염증질환 연구센터) [2014.12.10 디지털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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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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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아이러니로부터 시작하자. ‘죽은 시인의 사회’는 얼마 전 세상을 뜬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가 돋보인 수작이다. 영화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인이 살아있는 사회를 꿈꾸는 무리가 만든 비밀 결사 조직의 이름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와 사회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그것을 비판하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공유하는 회합. 낭만적이고 아마추어적이지만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웠고 영화는 고전이 됐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비밀 결사 이름도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것도 아닌,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직설적인 은유일 뿐이다. 그 많은 시인들은 어디 두고 시인이 죽었다고 말하는가. 얼마 전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보사가 주최하는 고교문예 심사가 있었다. 근 육칠년간 해마다 해오던 일이라 별다른 생각 없이 심사를 수락했는데, 정작 작품을 받아들고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겨우 두 사람의 시. 응모자 수가 턱없이 줄었고 작품의 질도 떨어져서 더 이상 본선에 올릴 작품을 고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사정을 확인해보니 일반고 학생들의 응모도 줄었지만 해마다 단체로 응모해오던 몇몇 예고 학생들의 작품이 아예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늘 상을 휩쓸어가던 예고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놀랍기에 앞서 신기한 일이었다. 세부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입시 제도의 변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문예 특기자 전형이 줄어들었거나 인정 범위가 한정되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 하여 지도 교사들이 응모를 꺼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시를 창작하고 응모하는 것이 철저히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창작조차도 입시 전략이 되는 우리 현실이 새삼스럽게 환기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예고 학생들의 세련되지만 종종 진정성이 결여된 작품을 심사할 때 또한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학교에서 응모한 작품들은 소재나 주제, 수준까지 엇비슷해서 이름을 가리면 서로 섞어놓아도 될 만큼 개성이 없고 뻔했다. 특이한 것은 응모한 시들 대부분의 내용이 어둡다는 것이었다. 뒤틀린 가족 관계와 미움으로 가득한 가정, 실직한 부모와 기울어가는 가계, 가난과 질병으로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 등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넘쳤다. 요즘 청소년 세대가 이처럼 구구절절 복잡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월등하게 차이가 나는 작품을 수상에서 아예 제외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작에 올리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은, 투박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사회와 인간을 보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몇몇 응모작의 건실함 때문이었다. 응모작 중에는 진심으로 시를 쓰고 싶어하고 앞으로도 쓸 것이라고 짐작되는 순수하고 진지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 시를 쓰는 학생들을 훗날 문단에서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매년 심사를 해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제 지나간 풍경이 되는 모양이다. 입시 상황이 변화되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그 시간에 물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한 문제도 놓치지 않도록 반복되는 문제 풀이 훈련을 받을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문학 창작을 가르친다는 웹사이트와 개인 과외 광고가 공공연히 나돌고, 기성 시인이 고액을 받고 시를 대필해준다는 고발성 기사가 실린다.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신춘문예 또한 해마다 비슷한 시비에 휩쓸린다. 조야한 테크닉을 가르쳐서 시를 찍어내고, 표절한 시로 입시와 등단이 가려지는 것은 문화의 열등성을 보여주는 한심한 코미디이다. 그러나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 창작 자체가 사라져가는 현실은 그보다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시가 재활용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취급되는 현실 그야말로 ‘죽은 시인의 사회’인 것이다. 문혜원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4.12.4 중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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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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